칼 로저스(1902-1987)는 인본주의 심리학의 창시자로 내담자 중심 상담 기법을 개발하였다. 그의 이론에서는 인간의 행동과 생각은 개인이 세상을 어떻게 지각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며 개인의 경험과 선택을 통해 비로소 '자기'가 만들어진다고 보고 있다. 칼 로저스는 컬럼비아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임상심리학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시카고대학교 그리고 위스콘신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64년에는 교수직을 사임하고 서부 행동과학연구소와 인간 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심리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주요 저서로는 『카운슬링 심리치료 』, 『내담자 중심 치료 』, 『존재의 방식』등이 있다.
칼 로저스는 미국의 심리학자가 수상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상 두가지, 즉 심리학자의 직업적 활동에 주어지는 상과 심리학자의 과학적 업적에 주어지는 상을 모두 수상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이런 점에서 로저스는 사람이 사랑받고 자라났을 때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심리학적으로 이론화한 사람답게 그 자신 역시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1923년에 로저스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뉴욕의 유니온 신학대학원에 진학한다. 하지만 로저스의 부모는 그 소식을 듣고 크게 격분했다. 유니온 신학대학원은 근본주의 노선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는 로저스가 만약 근본주의 학풍을 가지고 있는 프리스턴 신학대학원에 진학한다면 결혼을 약속한 헬렌의 학비까지 전액 보조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로저스는 부모님의 그러한 제안이 자신의 영혼을 매수하겠다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거절했다.
로저스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서 유니온 신학대학원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대학원 재학 중에 로저스는 성행동을 연구하는 심리학자가 연구에 참여할 커플들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연구자를 찾아갔다. 연구를 위한 인터뷰를 받으면서 로저스는 처음으로 헬렌이 자신과의 부부관계를 만족스러워하지 않고 있다는 시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로저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지만 로저스와 헬렌은 성문제에 관해 진지한 토의를 거듭하는 과정을 통해 둘 사이의 관계를 더욱 더 굳건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로저스는 신학보다도 심리학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로저스는 컬럼비아 대학의 교육대학원으로 전과 신청을 했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는 로체스터의 아동학대예방센터에서 심리학자로 일하게 됐다. 로체스터에서 로저스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효과적인 상담을 위해서는 상담자가 내담자를 전적으로 리드해 나가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내담자에게 어느 정도 의지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로체스터에서의 상담 경험을 통해 로저스는 정말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은 치료자가 아니라 바로 내담자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로저스에 따르면 지시적인 상담과 비지시적인 상담의 가장 큰 차이는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누가 주도적으로 말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로저스는 『상담과 심리치료 』에서 지시적인 상담가는 내담자보다 약 3배 더 말을 많이 하는 반면에 비지시적인 상담가는 내담자의 절반 수준으로만 말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지시적인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상담자의 말을 듣게 되지만 비지시적인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상담자에게 들려주는 셈이 된다. 어려서부터 권위적인 인물에 반기를 들었던 로저스가 권위적인 상담가를 비판하는 심리치료 이론을 제안한 것은 심리학적으로 보면 승화에 해당 된다고 할 수 있다.
로저스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정신분열증에 준하는 수준의 정신적인 혼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료 올리버 덕분에 회복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올리버는 동료인 로저스와 상담하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로저스를 치료시켰다. 로저스는 절망 속에서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으며, 그 결과 사랑을 주고 또 받는 것을 이전보다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로저스가 겪은 이러한 정신적인 위기는 그의 상담이론에도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는 1951년에 비지시적인 치료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담자 중심 치료법'을 제안했다. 로저스는 비지시적인 상담 이론에서 상담자가 내담자의 말에 인내심을 가지고 우호적인 태도로 경청하되, 지적으로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내담자 중심 치료법에서 로저스는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이지적이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정서적으로 온화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내담자 중심 치료에서 상담자의 핵심적인 역할은 내담자가 상담 과정에서 어떤 내용을 말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상담자에게 이해받고 또 수용되고 있다는 심리적인 안전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57년에 로저스는 자신의 상담이론을 집대성한 「치료적인 성격 변화를 위한 필요충분조건 」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로저스는 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실천 덕목으로서 세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공감적 이해다. 둘째, 진실성 및 일관성이다. 그리고 셋째는 긍정적 존중이다. 로저스에 따르면, 이 세 가지 덕목은 다른 사람들과 성공적으로 관계 맺는 데 가장 중요한 비결인 동시에 상담가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태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