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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의 사랑의기술,사회적 무의식,사회적 이데올로기로서의 무의식

by 오늘도웃자쏭 2025. 5. 18.

에리히 프롬

에리히 프롬(1900-1980)은 독일 태생의 미국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학자 그리고 철학자로서, 기존의 프로이트 이론에서 벗어나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신프로이트학파를 형성했다. 그는 자유라는 개념을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부분으로 보았으며, 사회심리학이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에리히 프롬은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으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컬럼비아대학교, 베닌튼대학교, 멕시코 국립대학교, 그리고 예일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대표작으로는 『 자유로부터의 도피』,

『건전한 사회 』,『사랑의 기술 』,『소유냐 존재냐 』등이 있다.

신프로이트학파의 선두주자 중 한 명인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19세기가 '신은 죽었다'가 화두였던 시대라면, 20세기는 '인간이 죽었다'는 것이 문제로 대두된 시대였다. 그의 주요한 이론적 관심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으로서 마르크스의 사회적 비판의식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접목하는 것이었다. 

에리히 프롬은 마르크스의 이론과 프로이트의 이론이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마르크스 이론에는 심리학이 존재하지 않는 반면, 프로이트의 이론에는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에리히 프롬은 사회적 성격에 관심을 가졌다. 사회적 성격이란 특정 사회적 조건에 의해 형성된 어떤 집단(예컨대, 국가 또는 계급) 구성원들의 행동 패턴을 말한다. 

예를 들면, 다른 부족을 습격하고 약탈함으로써 생활기반을 마련하는 원시 부족의 경우, 전투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한 성격을 공유해야 하고 대조적으로 농경부족의 성원은 폭력을 배척하고 협조적인 성향을 공유하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구성원들 사이에 노동을 열망하고 금전 및 재화의 축적에 관심을 나타내며 이윤 추구 동기를 강조하는 행동 특성이 공유된다.

 

에리히 프롬이 제안한 분석적 사회심리학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바로 사회적 무의식이다. 그는 의식과 마찬가지로 무의식 역시 사회적 현상으로서, 일반적으로 한 사회 속에서의 경험은 특정 무의식적 내용이 의식화되는 것을 금지하는 사회적 필터로 걸러진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필터는 주로 언어, 논리, 금기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필터는 개인적인 믿음이 진실인 것처럼 유도하는 이데올로기 속에 숨겨진 채 기능한다.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모든 사회에서는 만약 사회의 구성원이 의식한다면 사회가 혼란에 빠질 수 있는 사회적 관념이나 사상에 대한 일종의 제도적 검열 장치가 작동된다. 즉, 위험한 사상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사회적 무의식의 내용은 사회구조의 제반 조건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공격성, 반역, 고독, 불행, 권태 등이 사회적 무의식을 구성하게 된다. 어떤 사회에서는 인간관계를 사랑하는 일이 억압되고 그 대신 재산의 축적을 높이 평가하는 일이 장려된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 최대의 공포가 바로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립되거나 추방당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에 따르면, 사회는 추방이라는 협박을 통해 사회적인 억압이라는 목표를 달성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해 에리히 프롬은 사회적 억압과 관계된 세가지 도피의 메커니즘을 소개했다. 그것은 권위주의, 파괴성, 자동기계화로서 이것들은 개인이 자유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비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사회-심리적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다.

첫번째 권위주의 인간이 자아의 독립성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에게 부족한 심리적인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다른 대상에 자기 자신을 융합시키는 경향성을 말한다. 권위주의 메커니즘은 복종과 지배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인 관계에서 분명하게 관찰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사회적 노력이 견딜 수 없는 사회적 고독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타나는 행동이라는 점이다.

두번째 도피 메커니즘은 파괴성이다. 파괴성은 개인이 자신과 비교가 가능한 대상을 제거하려 하는 것을 말한다. 파괴성과 가학-피학적 추구 경향성이 서로 유사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 둘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가학-피학적 추구 경향성은 특정 대상과의 결합관계를 지속하고자 하는 동기를 갖고 있는 반면에 파괴성에서는 대상을 제거하고자 한다. 

세번째 도피 메커니즘은 자동기계화이다. 이것은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스스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문화적 양식에 의해 주어지는 행동 특징을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수용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현대 대중사회에서는 사람들 간의 구분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문화적으로 기대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생활하게 된다. 자동기계화가 일어나는 중요한 이유는 그러한 행동을 통해 나와 타인 간의 갈등이 소멸되고 고독감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은 현대 사회의 인간소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실천적 방법으로 '사랑의 기술'을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현대인은 무슨 일이든 빨리빨리 해치우려 노력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시간을 절약함으로써 얻는 것은 무가치하게 보내는 시간밖에 없다. 그렇게 되는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만 너무 마음을 쏟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사람들이 자신에게 참된 마음을 쏟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사람들이 너무나 이기적이라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 』에서 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라 많이 주는 자가 부자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사랑은 받기만 하는 것도 주기만 하는 것도 아니며, 자기 자신과 타인, 가족, 세상 모두를 사랑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대가 없이, 대가에 대한 기대 없이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긴 다는 것이고, 우리의 사랑이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도 새로운 사랑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희망에 자신을 완전히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 즉 생명을 주는 과정을 포함한다. 이 말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랑을 통해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것을 전해주는 것을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자신의 기쁨, 관심, 이해, 지식, 유머, 슬픔등 자신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전해준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심리학적인 상징의 의미에서 자신의 생명을 줌으로써 자기 자신의 생동감을 고양하는 동시에 타인의 생동감을 고양시키고 또 자신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동시에 타인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준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서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주는 것 자체가 절묘한 기쁨이 된다.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인간의 삶에서 사랑을 포기하는 일은 존재 할 수 없다. 따라서 사랑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다. 즉, 실패의 원인을 밝힌 뒤 사랑의 기술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