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예술, 철학과 심리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불안은 일상적인 감정이다.
불안이 일상적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안과 불편을 명확히 구별해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게다가 집단주의 문화의 영향으로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간접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불안은 확실히 인상적인 감정이다.
어떤 이들은 대상이 모호할 때는 불안, 대상이 명확할 때는 두려움이나 공포라고 구분하기도 하지만,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서는 이런 구분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에 두려움이나 공포가 포함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신장애의 진단 기준인 DSM-IV에서는 단순 공포증, 사회 공포증, 광장 공포증, 공황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급성 스트레스 장애, 강박 장애, 일반화된 불안 장애를 불안 장애의 하위 범위에 넣고 있다.
단순 공포증은 특정 공포증이라고도 한다. 어떤 특정한 대상이나 상황에 노출되었을 때 임상적으로 심각한 불안을 경험하며, 회피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단순 공포증은 대상에 따라 동물형, 자연환경형, 혈액-주사-손상형, 상황형, 기타형으로 구분한다. 비둘기나 개, 쥐, 거미, 뱀 등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동물형이다. 강이나 바다, 또는 산을 무서워하면 자연환경형, 상처나 피 그리고 주사에 대한 두려움이라면 혈액-주시-손상형이다. 폐쇄 공포증이나 고소 공포증등은 상황형이며, 어느것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기타형이다.
사회 불안 장애라고도 하는 사회 공포증은 대인 기피증이나 대인 공포증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되는 발표 상황은 물론, 단지 다른 사람과 함께 있기만 해도 크게 불안을 느낀다. 그 정도가 단지 내향적 성격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며,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심각해야 사회 불안 장애로 진단을 내릴 수 있다.
광장 공포증은 운동장처럼 넓은 장소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단지 넓은 장소를 무서워한다면 특정 공포증의 상황형으로 진단한다. 여기서 말하는 광장은 아고라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민회나 재판·상업 ·사교 등의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공 장소를 의미한다. 결국 광장 공포증이란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지만 자신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개인적으로 도와줄 사람이 없는 공공장소를 무서워하는 것이다. 광장 공포증의 주요한 원인은 공황 장애다. 공황 장애란 비정기적인 강한 두려움이나 불쾌감이 있으며,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이 가빠지거나 질식당할 것 같으며, 토할 것 같은 느낌이나 가슴에 통증을 느끼고, 어지럽고 식은땀이 나는 등의 신체적인 증상과 스스로에 대한 이질감이나 세상과 동떨어진 것 같은 느낌, 스스로에 대한 통제감 상실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의 증상이 갑작스럽게 나타나 10분 이내에 최고조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혼자서는 외출을 할 수 없는 광장 공포증을 갖게 된다. 가족이나 친구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과 함께하면 외출이 가능하기도 하며, 혼자 외출할 때에는 버스나 지하철보다는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급성 스트레스 장애는 심리적인 충격과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정신장애다. 이 장애는 퇴역후에도 전쟁에 대한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참전 용사들을 돕기 위해 정신장애의 진단 기준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외상 사건이 꼭 전쟁일 필요는 없다. 교통사고나 폭행, 테러나 자연재해처럼 개인이 극심한 공포와 무력감을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
강박 장애의 특징은 심각한 불안을 유발하는 강박 사고와 불안을 감소시키는 강박 행동이다. 강박 사고는 개인이 의도적으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 의지와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머릿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생각이다. 심각한 불안을 유발하는 강박 사고의 내용은 성이나 죽음과 연관된 것이 많다. 강박 행동은 정해진 규칙이나 틀이 명확해 마치 종교 의식처럼 보인다. 실제로 프로이트는 종교를 불안한 사람들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의식을 거행하는 강박 장애의 일종으로 보았다.
소위 결벽증이라고 하는 증상도 강박 장애다. 결벽증은 자신이 오염되었다는 생각으로 불안해지고, 손 씻는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불안을 감소시키려고 한다. 결벽증인 사람들은 손이나 몸을 씻는 행동이 일반인들과 다르다. 되는 대로 씻는 것이 아니라 순서와 횟수가 정해져 있으며, 피부가 손상될 정도로 과도하게 씻는다.
강박 장애는 어떻게 보면 완벽주의적인 성향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모든 강박 장애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제는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강박성 성격 장애라고 따로 분류하고 있다.
일반화된 불안 장애는 범불안 장애라고도 하는데, 최소 6개월 이상 지속되는 심한 불안이나 근심, 걱정이 특징이다. 버스를 타면 사고가 날 것 같아 불안하고, 사람들을 만나면 자신을 싫어할 것 같아 불안하고, 심장이 두근거리면 큰 병은 아닐까 불안하고, 동물을 보면 자신을 해칠까 불안해하는 등 매사에 과도한 불안을 느낀다. 이처럼 어떤 대상에 국한되지 않고 공중에 떠다니는 듯한 불안을 유동 불안이라고 한다.
불안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정신분석에서는 정신장애의 원인으로 불안을 꼽는다. 이처럼 정신장애를 일으키는 불안을 신경증적 불안이라고 한다. 신경증적 불안은 성이나 공격성의 추동으로 가득 찬 무의식혹은 원초아가 현실화되려고 할 때 자아가 느끼는 불안이다.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욕구들이기 때문에 자아는 이러한 불안을 직면하지 않으려고 온갖 정신장애를 만들어낸다. 일례로 불안을 특정 대사에 투사하면 특정 공포증이 된다.
신경증적 불안은 종종 도덕적 불안과 연관이 있다. 도덕적 불안이란 사회적인 규범을 위반했을 때 느끼는 불안이다. 신경증적 불안이 원초아로 인해 발생한다면, 도덕적 불안은 초자아 때문에 발생한다. 이 외에도 현실적인 위험에 대한 반응인 현실 불안이 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래를 쳐다볼 때나 사고를 당할 뻔했을 때처럼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느끼는 불안이다.
철학의 한 분파이면서 심리치료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실존주의는 신경증적 불안 이외에 삶과 죽음, 고립, 의미, 자유와 같은 실존 때문에 발생하는 실존적 불안을 가정했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누구나 불안을 느끼는 존재라고 본다. 신경증적 불안이 정신장애로 연결되는 부정적인 불안이라면, 실존적 불안은 경우에 따라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불안이란 살아 있는 한 떨쳐버릴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불안을 없애려고 아등바등하다 보면 오히려 더 불안해지고, 문제와 사건이 더 커진다. 불안을 실존과 뗄 수 없음을 인정하고, 불안을 견디는 힘을 키워 에너지와 창의성의 원천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본래 사람은 너무 편안하고 즐거우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많은 예술가들은 불안할 때 작품을 만들고, 학생들은 불안할 때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다. 물론 불안을 견디는 힘이 적다면 예술가의 작품은 빈약하고, 학생의 성적은 향상되지 못할 것이다.